보물섬 제주/제주이야기

원시적 모습을 품고 있는 나의고향 섭지코지

때죽낭 2017. 9. 3. 08:20

 

원시적 모습을 품고 있는 붉은오름

 

▢ 신양리 설촌

신양리 마을은 조선조 말엽인 서기 1894년에 어로행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성리 에서 내려와 움막을 짓고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설촌의 시초가 된 것 입니다.

마을이름은 곡식을 수량으로 하는 말(斗)과 같이 우묵하게 생겼는데 머리 쪽은 막히고 밑은 터졌다고 하여『방두포(房斗浦)』라고 했고 주민들은 <방뒤 >라 불렀는데 새로 신설된 마을이며 살기에 편하다고 하여 <신안동(新安洞) >이라 잠시 부르다가 해방이 됨과 아울러 새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은 마을, 또 금방 떠오른 새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마을이라 하여 신양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섭지코지입니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오름이 있는데, 이 가운데 약 340여 개는 분석구 즉 송이로 분출된 오름 들이죠!

평평한 대지위에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분석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경치는 제주도에서 으뜸가는 자랑거리 가 아닌 가 봅니다.

 

▢ 신양리 층에서

저기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

궁금하죠?

뜨거운 마그마가 지표를 향해 올라오던 도중 물을 만났더니 격렬하게 큰 폭발을 일으켜 분출한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인 성산일출봉입니다.

그리고 성산일출봉이 형성된 직후 침식작용에 의해 바닷가까지 운반된 물질들은 파도와 해류에 의해 퇴적층을 만들었는데, 이 퇴적층이 성산반도의 바닷가를 넓게 분포해 있는 돌로 보이는 것이 신양리 층입니다.

바로 여기에 넓게 깔려있는 돌들이죠!

이러한 돌을 우리들은 누룩돌이라고 합니다. 즉 응회암이죠!

그럼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인 응회구 오름, 섭지 코지는 육상 환경에서 분출한 분석구 오름입니다.

자~~그럼 분석구의 중앙부에서 외곽 부까지 모두 관찰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섭지 코지 붉은오름인 것이죠! 섭지는 협지(狹地) 코지는(곶) 즉 좁은 땅이라는 유래에서 온 것이죠! 그럼 많은 지질학자들이 연구대상이 되는 곳으로 일출봉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가볼까요!

섭지 코지 한 바퀴 돌아오는데 약 2시간정도 소요가 되겠습니다.

▢ 작은 포구에서(원개에서)

이 포구 이름은 질러리 원개라고 부르는 신양리 작은 포구입니다.

질러리는 말 여 라고 하는 제주의 토속 언어로서 말처럼 길게 뻗어있는 여

(암초)를 말합니다.

 

▢ 배 부서진 알(해녀 불 턱 앞)

왜정시대에 일본 화물선이 좌초되어 배가 부서진 곳 이라고 해서 배 부서진 알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여기 해안가는 아아용암이(점성이 높은 용암) 넓게 분포가 되어있어서 배가 좌초가 되면 쉽게 부서지기가 일수인 것이죠! 그때는 여기 주민들이 단무지, 김치 등을 가지고 가서 물물교환까지 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 성그레기(해녀 불 턱 에서 섭지 코지 방향 오른쪽 웅덩이가 있는 앞)

여기는 돌들이 성글 성글 있어서 성글레기 라고 하죠!

성글 성글 이란 점성이 낮은 용암(아아용암) 대지를 말하며, 여기를 맨발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곳입니다.

▢ 붉은오름 에서

여기는 하늬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라서 보름 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기 바위돌이 보이죠! 저 바위가 선돌 이라고 하는데 요!

선돌바위는 높이가 약 30m정도 되는데 마그마가 굳어져서 형성된 암경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선돌바위는 화산폭발이 일어난 분화구의 중심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선돌바위는 분석구를 만든 화산분출의 통로에 자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선돌바위는 분석구를 만든 분화구의 중심부에 해당되고, 등대 밑 부분이 분화구의 가장자리에 해당이 되겠죠!

그리고 분화구 중심부에서 왼쪽의 가장자리로 가면서 암 편 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등대가 있는 붉은오름은 파도에 의해 침식이 되어 일부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등대 아래쪽을 보면 붉은 송이와 검은 송이가 보이죠!

꼭 같은 송이면서 왜 색깔이 다를까요?

마그마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의 영향을 받아서 급속하게 산화되면 붉은색을 띠게 되고, 수증기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게 되면 검은색을 띠게 되는 것이죠! 바닷물이 없을 때 화산이 분출하여 스코리아(송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안에는 분석구가 침식되어 분석구의 중심부인 화도와 이로부터 멀리 날아가 쌓인 스코리아 층까지 노출되어있어서 분석구의 중앙부에서 외곽 부까지 모두 관찰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붉은오름입니다.

그래서 많은 지질학자들이 연구대상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 분석구 형성과정

자~ 그럼 분석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하죠?

마그마가 상승하면 휘발성분은 기포를 형성하게 되는데요!

기포는 비중이 낮아서 마그마를 뚫고 빠르게 상승하여 폭발을 하게 되는데,

이때 다소 굳은 마그마가 작은 크기로 깨어져 나오면 스코리아(6cm 이하 크기)가 되고, 큰 덩어리(6cm이상 크기)로 뿜어져 나오면 스페더 혹은 화산탄이

되는 것이죠!

 

▢ 선돌바위 전설 이야기

재미있는 전설이야기 하나 할까요?

저기 보이는 바위의 높이가 약 30m, 둘레 약 15m에 이르는 길쭉하고 커다란 선녀바위가 우뚝 서다하여 선돌바위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한 옛날에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곳 바다에 내려와 목욕을 하곤 했는데 동해용왕의 아들이 선녀들의 미모에 반해 가까이서 보려고 다가가자 녀들이 깜짝 놀라 날개옷도 제대로 입지 못 한 체 하늘로 올라가니 옥황상제는 선녀들이 모습이 흐트러진 데 화가 나 금족령을 내려 다시는 내려가지 못하게 했는데, 동해용왕의 아들은 그만 상사병에 걸려 눕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에 점쟁이가 이르기를 "매일 밤 자정에 선녀들이 내려왔던 자리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동해용왕 아들은 그 말을 따라 99일까지 기도를 드리고 마지막 100일째 기도를 드리러 출발했는데 바다가 몹시 거칠어 다음날 먼동이 틀 무렵에야 도착했는데 마을에서 달빛 같은 수레를 거두어들이려고 하자 동해용왕 아들은 수레 끝을 잡으려고 바다를 박차고 뛰어 올랐으나 그만 30여m의 허공에서 멈추니 이 사연을 안 옥황상제가 그를 돌로 만들어 그 자리에 서있게 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동해용왕 아들은 선녀를 기다려 그 자리에 돌이 된 서 있다고 합니다.

 

 

▢ 협자연대에서

조선시대에 옛 군사적 통신수단으로 적의 침입이나 위급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횃불을 사용하여 인근 마을이나 군대가 있는 곳에 빠르게 연락하던 시설입니다.

봉수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연대는 해변 가까운 높은 지대에 설치하는 반면 봉수대는 산 정상에 위치한다는 점이죠!

수산진에 소속된 협자연대는 해안 절벽과 푸른 바다, 선돌바위 같은 주변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죠! 이 연대는 옛 모습이 잘 남아 있으며, 연대 위에는 화덕자리도 남아 있고, 높이 4m, 가로 8m, 세로 10m로 쌓인 석축이 신양리 봉수대인 협자연대라고 합니다.

봉수는 봉(烽:햇불)과 수(燧:연기)로 변방이나 국경의 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고대 통신법으로 위치와 임무에 따라 경봉수(한양에 있는 봉수), 연변봉수(국경이나 해안지대에 설치된 봉수),내지봉수(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봉수) 로 구분이 되었죠! 낮에는 연기, 밤에는 햇불로 신호를 했는데 국경에서 적이 나타났을 때 두 가닥, 해안 가까이 접근 하면 세 가닥, 적이 상륙하면 네 가닥, 접전하면 다섯 가닥을 피어 올렸다고 합니다.

제주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제주 해안에 25개소 봉수와 38개소의 연대가 있었으며, 별장 378명, 직군 900명 등이 근무했다고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이 연대는 북쪽으로는 오소포 연대, 성산포 연대와 교신하였고 서쪽으로는 말등포 연대와 교신하였던 곳으로 1973년 4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문화유적인 것이죠!

 

▢ 구싯게 동산(주차장 위 언덕)

여기는 일명 구싯게 동산이라고 합니다. 용암이 흐르면서 둥그런 원형 통같이 보인다고해서 구싯게 라고 합니다.

저기 보이는 바위가 아아용암이 흘렀던 용암통로입니다.

높이가 약5m정도 되는 얇은 판상의 암석이 양쪽으로 거의 수직의 용암 벽을

이루고 있는데, 그사이가 바로 용암이 흘렀던 통로입니다.

여기에는 용암 벽을 이루고 있는 판상의 암석에는 주먹 크기의 클링커들이 붙어 있는 것을 보이고 해안에 노출되어 있는 암석과 용암통로의 암석을 덮고 있는 클링커들은 모두 바닷물에 의해 침식이 되어 습니다.

저기 길게 보이는 바위 보이시죠! 저렇게 길게 뻗어있는 바위를 일명 기차바위라고 하는데 여기 지역주민은 방에개 코지라고 부릅니다.

방아와 같이 보인다고 해서 방에개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죠!

 

▢ 주차장 지나서 언덕 앞

이 동산을 볼래 출 동산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보리수나무가 많이 있다고 해서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해안가는 100여 년 전에 고래가 죽었다고 해서 고래죽은 알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 마무리

여러분 섭지 코지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자연이 아름다음을 느끼셨나요?

저가 어렸을 적에는 섭지 코지는 소풍장소로서 최고의 장소였죠!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이 너무 아름답죠!

드넓은 천연 잔디에서 뛰어 놀던 시절이 마냥 그립기만 합니다.

 

지금은 개발로 인해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의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고 사랑한다면 이 자연은 우리 후대들에게 물려줄 자산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