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오름

다랑쉬오름

때죽낭 2017. 9. 3. 07:39

다랑쉬 오름

□ 형태 : 원형

소재지

 

표고(m)

비고(m)

둘레(m)

면적(㎡)

저경(m)

구좌읍 세화리

산6번지

382.4

227

3.391

800.464

1.014

 

□ 유래

다랑쉬 오름의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보인다하여 도랑쉬, 달랑쉬, 월랑봉 등으로 부르고 있다.

민속학자 김인호 박사는 다랑쉬는 달수리의 우리말(고구려어, 부여어)로 높은 봉우리, 고귀한 봉우리란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현평효 박사는 달, 돌은 높다 또는 산이라는 뜻의 고구려어 달과 같은 계열의 말로 제주도에서 허다하게 쓰인다고 한다. 결국 다랑쉬는 높은 봉우리란 뜻으로 우리말인 달수리인 변화된 형태로 남아있는 고구려어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다랑쉬오름의 한자명은 대랑수악(大郞秀岳),대랑봉(大郞峰),월랑수산(月郞秀山),월랑봉(月朗峰)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 망곡단

다랑쉬오름 북쪽 정상에는 1720년 조선 숙종임금이 돌아가시자 효자 홍달한(성산읍 고성리)이 조선국왕의 승하를 슬퍼하면서 설단분향하던 자리인 망곡단이 있다. 망곡단은 북쪽의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바다건너 조선왕조를 기릴 수 있는 좋은 장소이며, 오름의 모습이 향을 피워 망곡하는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망곡단에서 슬퍼 울었던 효자 홍달한의 기록은 오름과 제주인의 관계를 나타내는 훌륭한 기록이며 제주문화를 전달해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 분화구

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는 규모가 아주 큰 편으로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만큼 깊은 곳으로 유명하다. 다랑쉬 오름 분화구에는 제주를 창조한 여신인 설문대 할망의 신화가 전해진다.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을 만들 때 한줌씩 집어놓으며 간 것이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으로 자리 잡았는데 다랑쉬 오름은 너무 도드라져 주먹으로 탁 친 곳이 패어져 분화구가 되었다고 한다. 분화구 바닥은 다랑쉬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지었던 밭으로 주변에는 돌담이 잘 보존되어있다. 세림의 화산분출물질로 된 토양환경에 맞추어 농사는 주로 물 빠짐에 적합한 콩,수수,피 등을 재배했다고 한다.

 

□ 다랑쉬마을

다랑쉬마을은 다랑쉬 오름 남측에 위치했던 마을로 약5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이다. 주로 농사와 목축을 하였으며 동굴함몰지에 형성된 샘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마을 중심에는 팽나무를 신어 마을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으며, 집 둘레에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바람을 막았던 제주 고유의 마을 구조가 남아있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환경인 화산지역의 황무지를 손으로 개척하며 살아왔던 제주도 웃뜨르 문화가 오롯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그러나4.3사건 당시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내려졌던 소개령의 광풍을 피하지 못해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아픈 운명을 갖게 되었다. 4.3사건 이후 마을 재건사업을 시도했으나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는 마을이 되었다.

 

□ 다랑쉬 굴

다랑쉬 마을 일대는 파호에호에 용암류가 분포하는 지역으로 크고 작은 용암동굴과 숨골 등이 분포 하고 있다.

다랑쉬굴은 다랑쉬마을 남동쪽 임야의 구릉지에 위치한 용암동굴로 규모는 수 십미터에 불과한 소규모 동굴이다.

4.3사건(1948년)으로 다랑쉬굴에 피신했던 지역주민들이 연기에 질식해 사망한 사구가 발견된 곳이다.

다랑쉬굴의 비극은 지역 주민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제주 섬 동부지역 제주시(당시 북제주군)구좌읍 다랑쉬오름 인근 들판 다랑쉬굴에서 11구의 4.3희생자 유해가 발견된 것이다. 이 사건은 4.3의 비극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진상규명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유족들은 희생자 주검들을 무덤에 안장하자고 호소했지만,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당시 정보기관과 경찰, 제주도 등이 개입하면서 끝내 5월15일 화장돼 구좌읍 김녕리 앞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1948년 12월 18일 군․경․민 합동토벌대는 다랑쉬굴에 피신해 있던 9살 어린이부터 51세 부녀자까지 주민11명을 발견했다. 주민들을 굴 안쪽으로 몰아 넣은뒤 짚에 불을 붙였다.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해 모두 목숨을 잃었다.

고통을 참지못해 손톱으로 땅바닥을 파거나, 귀나 코에서 피를 흘리는가 하면 괴로은 표정으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처참하게 숨져있었어”

 

한국 현대사 격랑 속에서 우여 곡절을 겪은 지역주민의 증언으로 세상에 드러난 다랑쉬굴은 지금은 4.3순례객들의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는 4.3비극의 대표적인 장소가 됐다.

 

□ 소사나무

소사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전라도와 제주 등지에 자라며, 다랑쉬오름 분화구 남쪽사면에 자생하는 소사나무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로 해안의 산지에서 자라는 소사나무는 이곳에서 자라는 것이 특이 할만하다.

 

□ 오름의 특징

다랑쉬 오름은 분화구를 갖고 있고 붉은 송이로 이루어진 분석구로 대표되는 제주의 오름 가운데 단연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어 오름의 여왕으로 불린다. 오름 정상부에는 깔데기형의 분화구가 뚜렷하고 오름 사면의 경사도가 가팔라 화산폭팔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오름의 자체높인 비고가 227m로 상당히 높고 분화구의 깊이도 115m로 꽤 깊다. 제주도에 분포한 오름 중 비고가 7번째로 높은 오름이다.

분석구의 전형을 보존하고 있는 다랑쉬 오름은 제주 오름의 화산활동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화산지질학적으로 학술적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제주의 오름 랜드마크로 선정되어 오름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오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제주도에 분포하고 있는 오름 중 비고가 200m이상 되는 오름

1. 영실 : 389m

2. 어승생악 : 350m

3. 산방산 : 345m

4. 군산 : 280m

5. 족은두레왓 : 279m

6. 큰노꼬메오름 : 234m

7. 다랑쉬오름 : 227m

8. 큰바리메 오름 : 213m

 

□ 제주도에 분포 하고 있는 오름 중 깊은 분화구를 갖고 있는 오름

1. 산굼부리 분화 깊이132m, 둘레 2.700m

2. 다랑쉬오름 분화구 깊이 115m, 둘레 1.500m

3.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 깊이 108m, 둘레 1.700m

 

산정화구호(山頂火口湖)를 갖고 있는 오름(9개)

제주시 : 물장오리, 어승생, 원당봉,

한림읍 : 금오름, 세미소,

남원읍 : 물찻오름, 사라오름, 물영아리, 동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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